송전선로 앞에 선 사람들, “우리는 전기를 소비한 적이 없다”

(사진 설명 : 8일 오전 송전선로 백지화 대책위원회가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사진=대책위원회(c))

8일 오전, 오송C&V센터 앞은 차가운 겨울 공기만큼이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345kV 신계룡-북천안 송전선로’ 입지선정위원회가 열리는 장소 앞에는 충남·세종·대전 시민 1,0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입지선정위 중단”과 “송전선로 백지화”를 외쳤다. 현장의 구호는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생존을 둘러싼 절박한 질문에 가까웠다.

송전선로를 둘러싼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날 집회에서 유독 강하게 느껴진 것은 ‘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분노였다. 호남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 전기를 수도권, 그중에서도 용인 국가반도체산업단지로 보내기 위한 송전선로가 충남·세종·대전을 관통한다는 점에서 주민들은 스스로를 “전력 생산도, 소비도 하지 않는 중간 희생지”라고 규정했다.

공주시 송전선로 백지화 대책위원회 한동희 위원장은 “한전은 용역회사를 앞세워 주민수용성을 철저히 무시한 채 경과대역을 설정했다”며 “전자파, 소음, 경관 훼손으로 인한 건강 피해와 재산권 침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발언은 정책 비판을 넘어, 국가 에너지 정책이 지역 주민의 삶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질문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정안면 주민 최상규 씨의 말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우리는 미래 행정수도의 주인이다. 한전의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싸워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다”는 그의 발언에는 분노와 동시에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이는 단순한 지역 민원이 아니라, 세대의 문제로 확장된 갈등임을 보여준다.

기자 눈에 비친 이날 집회의 핵심은 ‘송전선로 반대’ 그 자체보다도,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불균형이었다. 전력 생산지는 지역에 남겨두고, 소비지는 수도권에 집중시키는 방식이 계속된다면, 송전선로를 둘러싼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주민들이 ‘에너지 식민지화’를 언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지선정위원회는 절차를 강조하지만, 주민들은 과정에서 배제됐다고 말한다. 과연 국가 에너지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말하는 시대에, 수백 킬로미터의 송전선로로 지역을 관통하는 방식이 최선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충분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송전선로 아래에서 외친 이날의 구호는 단순한 반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는 희생을 선택한 적이 없다”는, 정책 결정의 출발점이 시민의 삶이어야 한다는 경고였다. 이 질문에 정부와 한전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그 답이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지, 아니면 해법의 실마리가 될지는 이제 정책 결정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공주뉴스=유성근 기자)

작성자 공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