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켜진 스크린, ‘1967호서극장’, 공주의 시간을 잇다

1967년의 추억과 2026년의 감성이 만난 문화공간
원도심 문화재생의 상징에서 공주 여행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한 도시의 문화는 오래된 건물보다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공주 원도심 한복판에서 30년 동안 멈춰 있던 호서극장이 ‘1967호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한때 시민들의 웃음과 눈물, 설렘과 추억이 머물던 단관극장은 이제 최첨단 미디어아트와 고전영화, 지역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공주의 새로운 문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1967호서극장의 재개관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사업이 아니다. 근현대 공주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콘텐츠를 입혀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문화 플랫폼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호서극장의 뿌리는 1959년 준공된 공주읍공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주읍민을 위한 문화시설로 건립된 공주읍공관은 영화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지역 문화예술의 중심 공간이었다. 이후 호서화물자동차주식회사가 건물을 인수하면서 극장의 기능을 유지했고, 1963년 ‘호서극장’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증축을 거친 호서극장은 1967년 400석 규모의 현대식 극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개관 기념 상영작은 영화 ‘고향’​이었다. 이후 수많은 영화가 이곳을 거쳐 갔고, 1978년에는 극단 함성의 연극 ‘에쿠우스’​가 공연되면서 충남 지역 공연문화의 중심 무대로도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단관극장을 비켜가지 않았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면서 관객은 점차 줄었고, 결국 호서극장은 1996년 폐업했다. 이후 창고와 상업시설 등으로 활용되거나 오랜 기간 비어 있으면서 시민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공간이 됐다.

호서극장이 다시 살아난 것은 공주시의 원도심 문화재생 사업 덕분이다. 공주시는 2021년 건물과 부지를 매입한 뒤 리모델링과 전시 콘텐츠 조성을 추진했고, 2026년 ‘1967호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다시 문을 열었다.

외관은 1967년 당시의 상징적인 모습을 최대한 보존했고, 내부는 완전히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곳은 1층 ‘호서디지털캔버스’​다. 가로 21m, 세로 13m, 높이 7m 규모의 대형 LED 월에서 펼쳐지는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과거 극장의 스크린을 현대적인 디지털 예술로 확장했다.

‘기억의 파동’, ‘제민천의 추억’, ‘금강의 물결’, ‘동학사와 갑사의 사계’ 등 공주의 자연과 역사, 사람들의 삶을 영상과 음악으로 표현한 콘텐츠는 시민들에게는 추억을, 관광객들에게는 새로운 공주를 만나는 시간을 선사한다.

2층 전시공간에서는 또 다른 감동이 이어진다. ‘호서의 행간을 읽다’를 주제로 꾸며진 전시에는 호서극장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극장에 들어가면 곰팡이 냄새와 필름 냄새가 먼저 났지만, 그 냄새가 오히려 극장에 왔다는 설렘이었다.”

“서울에서 상영한 영화가 한참 뒤 공주에 내려왔지만,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며 영화를 봤다.”

나태주 시인을 비롯한 시민들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공주의 생활문화사를 기록한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실제 전시장을 찾은 어르신들은 사진을 바라보며 “여기가 바로 그 자리였다”, “표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섰었다”며 저마다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내놓는다. 1967호서극장은 전시를 관람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들의 기억이 이어지는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고전영화 상영도 계속된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 6시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 영화가 상영된다. 캠핑의자와 소파에 자유롭게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은 과거 단관극장의 정취와 현대적인 감성을 함께 느끼게 한다.

1967호서극장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원도심 관광의 새로운 거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주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자원들이 모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있어 이곳이 여행의 출발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서극장에서 시작하는 공주 원도심 여행

1967호서극장을 둘러본 뒤에는 공주하숙마을로 발길을 옮겨보자. 1960~1980년대 대학가 하숙문화를 재현한 공간으로, 옛 공주의 생활상을 체험하며 복고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이어 공주산성시장에서는 공주의 대표 특산물인 알밤을 활용한 떡과 디저트, 향토음식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시장과 연결되는 제민천은 생태하천 복원 이후 갤러리와 독립서점, 한옥카페가 어우러진 감성 산책길로 변모해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행의 마지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공산성이다. 해 질 무렵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금강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인근 백미고을길에서는 공주의 다양한 음식과 카페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다.

특히 오는 8월 14일부터 16일까지는 금강신관공원에서 ‘공주 야(夜)밤 맥주축제’​가 열린다. 공산성과 금강철교의 야경을 배경으로 시원한 맥주와 공주 알밤막걸리, 다양한 지역 먹거리,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져 여름밤 공주의 또 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추천 여행 코스

1967호서극장 → 공주하숙마을 → 공주산성시장 → 제민천 → 공산성 → 백미고을길 → 금강신관공원(공주 야(夜)밤 맥주축제·8월 14~16일)

1967호서극장은 과거의 추억을 간직한 공간이면서도 미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무대다. 한때 시민들의 꿈과 설렘을 비추던 스크린은 이제 공주의 역사와 문화, 관광을 연결하는 새로운 빛으로 다시 켜졌다. 공주의 시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나는 방법은, 어쩌면 이 오래된 극장의 문을 다시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공주뉴스=유성근 기자)

작성자 공주뉴스